2003.10.10 안나푸르나 라운딩 11일

Annapurna Circuit day 11
- 자콧 - 킹가 - 까끄베니.


겨울에서 다시 가을로 돌아온 걸까요. 묵티나트를 출발하니 그동안의 삭막한 풍경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노란 단풍들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 마치 한국에서의 가을 산을 보는 것 같네요.

자콧 마을.

자콧을 지나니 풍경은 다시 황량한 사막 같은 모습으로 바뀝니다. 쏘롱 라를 오를 때의 깜깜한 새벽길에 견줄만한 특별한 느낌이네요. 먼지 풀풀 날리는 모래길을 계속 내려가다 동양인을 두 번째 만났습니다. 일본인 가족인데 남편은 걸어가고 부인은 말을 타고 내려갑니다. 아마도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좀솜 트레킹 왔나 싶은 게 어제 묵티나트에서도 본 것 같네요.

반대쪽으로 올라오면 쏘롱 라를 넘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3,800m인 묵티나트에서 5,416m인 소롱라를 넘는 사이엔 롯지가 없어서 하루에 올라가기엔 많이 힘들기 때문이죠. 그러나 가끔 몇 트레커들은 이 길을 시도한다고 하네요.

한참 가다 보니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왼쪽 길은 좀솜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내리막은 까끄베니로 가는 길입니다. 전설의 왕국 무스탕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는 무스탕 마을 까끄베니.. 오는 길의 체크 포스트에서 다른 트레커들의 일정을 보니 거의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까끄베니를 들르지 않고 좀솜으로 가네요. 혼자 오른쪽 길로 접어드니 가파른 내리막이 계속되고 드디어 보이는 마을의 전경이 아름답습니다.

까끄베니를 향하는 길.

까끄베니를 향하는 길.

오전 10시 도착. 이번 트레킹 일정 중 가장 짧게 이동한 날입니다. 숙소 도착하자마자 빨래부터 해서 옥상 테라스에 말리고 여느 때처럼 마을 한 바퀴 도는데 꼬마 둘이 졸졸 따라다닙니다.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고 같이 놀아줬더니 집에 가지도 않고 게스트하우스 밖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네요.

무스탕으로 향하는 길 쪽으로 가 보니 작은 무스탕 박물관도 있습니다. 바로 앞으로 보이는 길 쪽으로 가면 무스탕 왕국입니다. 무스탕을 여행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트레킹을 해야 한다고 하네요. 중간에 게스트하우스가 없으니 텐트를 가지고 가야 하고 음식을 만들 재료와 도구까지 가지고 가야 하니 짐이 엄청나게 많아지겠고 그런 이유로 당나귀며 포터도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말은 곧 돈이 많이 든다는 얘기가 되겠죠. 하지만 반면에 외지인의 발이 그만큼 닿지 않았다는 얘기이니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네요.

저 아래 보이는 까끄베니 마을.

까끄베니의 아이들.

칼리 칸다기 강의 모습도 멋있네요. 마치 화선지에 먹물로 그림이라도 그려놓은 듯 시원시원합니다. 건기라 물은 많이 줄어 강바닥이 많이 드러나 있지만 그게 오히려 더 좋아 보입니다.

멀리 절벽 위에 보이는 조그만 곰빠에서는 소원을 비는 의식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종이처럼 보이는 것들을 허공에 뿌리며 소리를 지르는 건지 노래를 부르는 건지.. 잠깐 머리가 멍 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올라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여서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논밭들과 사과 과수원들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소들이 여전히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밭과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걷습니다. 홍콩 부부는 오늘 좀솜까지 간다고 했으니 이젠 일정상 아마도 못 만날 것 같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포카라에서나 가능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