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09 안나푸르나 라운딩 10일

Annapurna Circuit day 10.
- 쏘롱라 - 차바부 - 묵티나트.

새벽 일찍 일어나 어제 미리 주문한 라면과 계란을 먹습니다. 트레커 모두들 들떠있지만 한편으로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해 보이네요. 5시에 출발할 계획이었으나 4시부터 많은 트레커들이 출발하기 시작합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불어오는 바람이 매섭습니다. 렌턴 불빛을 따라 경사진 가파른 길을 천천히 오릅니다. 침도 삼키면 안 되고 기침도 해선 안됩니다. 숨 쉬기가 힘들어서 한번 흐트러지면 다시 바로잡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쉬지 않고 천천히 한발 한발 마치 슬로우비디오처럼..

별들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비춰지는 설산 바라보며 1시간 정도 줄기차게 걸어 오르니 조그마한 찻집이 하나 있습니다.
외로워 보이다 못해 슬퍼서 눈물 날 지경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젊은 네팔 남자 혼자서 차와 간단한 스낵류를 팔고 있습니다. 밀크티가 그동안 꾸준히 올라 여기서는 한 잔에 70루피.. 타멜에서 한 잔에 5루피에 마셨으니 14배인 샘인데.. 아마 100루피를 달라고 했어도 감사히 마셨을 것 같습니다.

다시 줄기차게 오르막.. 이제 천천히 동이 터 옵니다. 구름 사이로 번지는 붉은 기운을 보며 오직 한 생각뿐.. 쏘롱 라 정상이 바로 눈 앞이었으면..

쏘롱 라 정상의 룽타.

사람들의 환호성. 드디어 쏘롱 라 정상. 여기에도 조그마한 찻집이 있습니다. 아마도 지구 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찻집이 아닐까요. 여기 주인인지 아니면 고용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사람은 어젯밤에 여기에서 잤겠죠.

돌무덤이 있고 수많은 룽타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찻집 바로 옆에서 한 서양인이 구토를 합니다. 많이 힘들어 하는데 다행히 저는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습니다. 앉아서 담배 한 대 물고 불을 붙이니 서양 애들이 다들 한 마디씩 하네요. 다들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럴 땐 자동카메라가 좋은데.. 아무에게나 부탁할 수 있으니..

정상에서 한 컷. 수염이 고드름이 되었다.

쏘롱 라 고개를 넘어 묵티나트까지는 끝없는 내리막길입니다. 5,416m에서 3,800m까지 한 번에 내려가야 하니 올라왔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닙니다. 물을 마시려고 물통을 보니 물이 사각사각하게 얼어 있습니다. 깎아지르는 듯한 내리막을 계속 내려가다 보니 지금까지 아프지 않았던 무릎이 아프네요. 내리막이 힘들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이야..

쏘롱 라에서 내려 가는 길.

저 멀리 묵티나트.

드디어 다울라기리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산이라는 생각이네요. 지금까지의 람중 히말, 안나푸르나 2, 피상 피크, 안나푸르나 4, 강가푸르나, 출루 이스트, 출루 웨스트를 보아왔지만 이 모든 산을 압도하는 느낌의 다울라기리입니다. 이틀 정도 더 가면 뚝체 피크, 닐기리, 닐기리 사우스, 안나푸르나 1,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리고 마차푸차레가 보일 겁니다.

묵티나트는 듣던 대로 조용하고 아름답습니다. 여기는 힌두교와 티베트 불교의 성지인지라 현지인들도 순례 오는 곳입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마을에 아름다운 사원까지.. 여기서 며칠 묵어갔으면 하는 속절없는 생각입니다. 연이은 기름진 음식 때문에 얼굴에 자꾸 뭐가 나고, 선크림을 계속 발랐는데도 코가 완전히 익은 것 같습니다.

티베트 사원도 들르고 힌두 사원도 들렀습니다. 티베트 사원에는 비구니 스님들만 계셨는데 사진 찍자고 하니 꼭 보내달라고 부탁합니다. 약속을 하고 사진 찍고 직접 만들었다는 수놓은 팔에 묶는 것도 하나 샀습니다.

묵티나트.

사원에서 비구니 스님들과..

묵티나트의 밤은 깊어가는데 많이 아쉽지만 내일 떠나기로 합니다. 그대신 내일은 까끄베니까지만 가기로 합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무스탕 마을이라 꼭 하루 묵어 가고 싶습니다. 드디어 고산증 걱정에서 해방.. 하이캠프나 쏘롱 라에서도 담배는 피웠지만 그래도 조금은 자제했었는데 이제는 다시 줄담배입니다.

 이틀 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4일 만에 샤워를 합니다.

묵티나트의 힌두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