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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2003.10.06 안나푸르나 라운딩 7일

Soul Kitchen 2020. 10. 30. 16:48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7일.
마낭.

오늘은 푹 자려했으나 여지없이 6시도 안돼서 일어났습니다. 프라켄 곰빠를 올라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안 가보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올라가기로 합니다. 초반에는 너른 밭들 사이를 걷는 쉬운 길이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경사가 됩니다. 길이 너무 힘드네요.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길 또한 아주 위험한 게, 겨우 겨우 한발 한발 디뎌가며 오르니 2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다 올라온 후의 여유인지 올라오길 잘했습니다.

라마 데쉬 스님의 거처는 거의 동굴 수준입니다. 나이 든 서양 할아버지 한분이 앉아계시네요. 사진을 부탁하여 서로 각자의 카메라로 사진을 차례로 찍어주었습니다. 스님이 직접 부어주는 물을 손에 받아 마셨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쏘롱라 고개를 넘기를 기원하는 말씀도 해 주시고, 차도 한 잔 얻어마셨습니다. 100루피를 보시하니 스님께서 오색실을 직접 목에 걸어 묶어주셨네요.

라마 데쉬 스님의 사원에서의 풍경.

마낭도 장난이 아니게 높은 곳인데 여기에서 또 깎아지른 절벽 위의 암자에서 기거하며 수행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생활일지 짐작조차 안되지만, 여튼 꿈같은 생활처럼 보이는 건 여행자만의 느낌인 건지.. 여기에는 올라온 트레커들이 하나둘씩 붙이기 시작한 증명사진들이 벽 한 면에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 얘기를 이미 들은 터라 올라올 때 증명사진 한 장 가지고 왔는데.. 하하.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떡 붙였습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한 무리의 서양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절 옆의 햇빛이 좋은 곳에서 한동안 설산들을 앞에 하고 오랜만에 책을 들었습니다.

내려와서 현지인들의 행렬이 보여 물어보니 장례의식을 치르는 중이라고 하네요. 많은 남자들이 장작으로 보이는 나무 하나씩을 어깨에 들쳐 매고 일렬로 행진해 마을로부터 먼 곳으로 걸어갑니다. 한참을 함께 따라가 조용히 옆에 앉아서 지켜보았습니다. 워낙 건조한 지역이라 혹시 티베트처럼 천장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화장을 합니다. 들고 온 나무는 장작이 되어 불이 되었습니다.

마낭 마을의 할머니들. 장례 출발 전. 
장작을 어깨에 메고 가는 마을 사람들.
마낭의 장례식.

오후에 잠깐 낮잠을 잤는데 자고 나니 머리가 상당히 아프네요. 입술은 부르트기 시작하고 머리도 아픕니다. 고산증 초기 증상인 것 같은데 그저 잠잠해 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호텔 앞 집 꼬마와 함께 놀았는데 영 똑똑한 것이 엄마 심부름도 하고.. 우물에서 물통에 물을 받아 끈으로 머리에 지고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오릅니다.

내일부터 3일간 가장 힘든 길을 가게 됩니다. 3,500m 에서 5,416m까지 이틀하고 반나절에 넘어야 하는데 이젠 이 악 물고 올라가야 할 겁니다. 달이 바로 손 위에 있습니다. 별들이 쏟아집니다. 누군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릅니다. 온 동네는 깜깜해지고 바람에 룽타 펄럭이는 소리..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오늘은 마음이 뒤숭숭합니다. 그동안 봐 왔던 네팔 산골 사람들의 힘들어 보이는 삶과.. 그러나 밝게 웃는 얼굴들..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눈.. 어느 곳의 삶이 더 행복한 건지는 감히 잠깐의 여행으로는 알지 못할 겁니다. 그저 순간의 감상일 수도 있을 거고.. 아니면 정말 행복이란 게 바로 여기 이 순간일 수도 있을 거고.. 단지 보는 만큼만 보이는 것만큼만 그리고 제가 아는 만큼만 느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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