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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2010.08.12 레에서 델리까지 [인도]

Soul Kitchen 2021. 3. 26. 11:50

천신만고..  의 뜻이 뭔고 하니.. 과연 누가 알리요.

저는 지금 델리입니다. 레에서 말 그대로 탈출했습니다. 혼자였다면 남아서 힘들어하는 그곳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팀원들을 건사해야 한다는 핑계로 많은 사람들을 그곳에 남겨 두고 비겁하게 팀원들과 함께 겨우 빠져나왔네요. 

그곳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원래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인데 이상 기후로 밤새 내린 폭우로 인해 모든 것들이 다 쓸려가버렸습니다. 초클람사르 근처의 한 마을은 산사태에 완전히 덮혀버렸습니다. 공항은 흙밭이 되었고 레 시내로 들어오고 나가는 양쪽의 길은 무너져 끊겨 완전히 고립되었습니다.

그 난리통에도 그곳 사람들은 진정 사람들입니다. 물값은 물론 야채값도 그대로고 본인들의 경황없는 와중에 차도 그냥 태워주더군요. 어떻게 그리 의연할 수 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업을 접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재기하는 사람들은 오직 여행자들 뿐이었습니다. 공항까지 태워준 택시 기사는 택시 안에 남겨진 짐꾸러미 찾아주러 다시 공항 찾아오더이다. 하루에 2리터밖에 안 되는 기름을 배급처럼 받는 택시가 말이죠.

그곳 사정은 지금 최악입니다. 인터넷은 겨우 연결되었지만 그나마 줄을 길게 서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려야 합니다. 랜드 라인은 다 끊겼고.. 오직 모바일만 됐다가 안됐다가 합니다. 전기도 끊겨서 저녁 두세 시간만 발전기를 돌리는데.. 그마저도 육로가 모두 막혀 기름이 부족해 곧 있으면 어둠 속에서 지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버스 스탠드는 물론 시내의 가장 큰 병원마저 진흙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공항의 활주로가 3일만에 정비되고 난 후 2주 동안의 정기 운항편의 표는 이미 바닥이 났고.. 인도 정부의 요청으로 긴급히 편성된 임시 항공편은 오직 공항 현장에서 현찰로만 판매됩니다. 새벽부터 표를 구하기 위해 공항은 서로 뛰고 밀치고 싸우는 아수라장입니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 애들은 비겁의 끝을 보여주었군요. 꽤 많은 이스라엘 남자들이 공항 출입문을 막아 다른 여행자들이 공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동안 다른 이스라엘 애들이 뛰어 들어가 미리 준비해 가방에 넣어 온 200여 명의 이스라엘 애들의 여권과 현금으로 항공권 싹쓸이.. 
 
사람 사는 일이 하늘에 달렸다지만.. 그리고 살고 죽는 문제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이미 하늘로 떠나버린 많은 사람들과.. 망연자실한 채로 길가에 쭈그려 앉아 있는 현지 사람들과.. 시신을 나르는 군용 차량들과.. 다시 검게 드리우는 하늘의 구름과.. 끝없이 늘어서 있는 ATM 기기 앞의 외국인 여행자들을 볼 때면.. 나 자신이 한없이 유한하고 힘없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더군요.

이직도 남아있는 여행자들과..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그곳 사람들.. 하늘이 도움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Chemrey Gompa. Lada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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